'폭군의 셰프' 역사 왜곡 논란, 원작 작가가 직접 해명?
'폭군의 셰프' 역사 왜곡 논란, 원작 작가가 직접 해명한 사연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즘 핫한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고 계신가요? 임윤아와 이채민이 주연을 맡아 시청률 15.4%까지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데요. 그런데 최근 이 드라마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졌어요. 오늘은 이 논란에 대해 원작자인 박국재 작가가 직접 해명한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해요.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원작 웹소설을 쓴 박국재 작가가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 반박하며 올린 사진. /박 작가 인스타그램기사 보러가기
'폭군의 셰프'에서 불거진 역사 왜곡 논란이 뭐길래?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제가 된 장면은 조선의 왕인 연희군과 명나라 사신이 나란히 앉아 경합을 지켜보는 장면이었어요. 게다가 왕이 사신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까지 나왔죠.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발끈했어요. "사신은 의례상 왕 아래에 앉아야 하는 것 아니냐", "조선왕조실록에도 청나라 사신은 왕 앞에 무릎 꿇고 조서를 전달했다고 나와 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왕은 왕좌에 앉고 사신은 동쪽 아래에 자리해야 했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죠.
역사 드라마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묘사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저도 처음엔 '아, 이건 좀 아닌데?' 싶었거든요.
원작자 박국재 작가의 해명, '국조오례의'를 근거로 들다
그런데 원작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의 작가 박국재 씨가 직접 해명에 나섰어요. 박 작가는 인스타그램에 '국조오례의'라는 역사적 문헌을 근거로 드라마의 묘사가 오히려 정확한 고증이라고 설명했죠.
'국조오례의'는 뭐냐고요? 1474년에 간행된 국가 공인 예법서예요. 당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중요한 문헌이죠. 작중 시기로부터 불과 30년 전에 편찬된 국가의 공식 예법서니까 신뢰도도 상당히 높아요.
사신과 왕의 자리 배치, 실제로는 어땠을까?
박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국조오례의'에는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방법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대요. 연회는 사신이 머무는 태평관에서 이루어지고, 사신의 자리는 동쪽 벽에, 왕의 자리(어좌)는 서쪽 벽에 위치하게 되어 있다고 해요.
즉, 왕과 사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 보고 앉는 좌석 배치가 맞다는 거죠. 더 놀라운 건, 유교적 예법에 따르면 방향이 서열을 의미하는데, 동쪽이 서쪽보다 더 높은 위치라서 사실상 사신의 자리가 오히려 상석이었다는 거예요!
저도 이 부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역사책에서는 잘 안 알려주는 디테일한 부분이라 더 흥미로웠죠.
왕이 사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이유는?
또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가 왕이 사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장면이었는데요. 이것도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맞는 의전이었다고 해요.
기록을 살펴보면 왕이 사신에게 먼저 읍(인사)하고, 사신이 답읍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명나라 사신은 황제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조선 왕보다 의전상 서열이 높았기 때문이래요.
박 작가는 "이건 국력이나 주권과는 아무 상관없다. 당시의 외교적 관례 혹은 국제 행사에서 통하는 프로토콜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어요. 현대로 치면 외교 의전 같은 거죠.
역사 왜곡 논란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이런 논란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흔히 역사 드라마나 사극에서 보던 장면과 달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왕이 항상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신하들이나 외국 사신들이 낮은 자리에서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왔거든요.
또 하나는 우리가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는 국가 간의 평등한 관계를 중요시하지만, 당시에는 명나라가 조선의 종주국이었고 그에 따른 의전이 있었던 거죠.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의 재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이번 논란을 보면서 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 얼마나 세심한 고증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실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됐고요.
역사 드라마는 재미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세부 사항을 100%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성격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세부적인 부분은 창작의 자유를 인정하는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논란을 통해 배우는 역사의 재미
이번 '폭군의 셰프' 논란은 오히려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준 것 같아요. 실제 조선시대의 외교 의전이 어땠는지, 명나라와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더 깊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박국재 작가의 해명을 듣고 보니, 드라마 제작진이 오히려 꼼꼼하게 역사적 고증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제작진의 노력이 더 돋보이는 것 같네요.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조선시대의 외교 의전이나 '국조오례의' 같은 역사적 문헌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드라마는 앞으로도 계속되니, 더 많은 역사적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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